「시그너리아 공화국의 계절은 빠르게 변한다.
국토의 동방과 남방이 바다에 접해있는 시그너리아는, 서방 국경의 인공조성림이 푸른 잎을 싹틔우고 꽃망울을 퍼뜨리는 짧은 봄이 지나면, 하늘이 무너진다고 생각될 만큼 폭우가 밀어닥친다.
옛 문헌에는 이를 정말로 신의 분노라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유일신의 제단을 섬기던 사제의 목을 베어 화장(火葬)하였다 전해어진다.
그 때의 풍습은 오늘날 가지가 세 개 뻗은 호랑가시나무의 나뭇가지를 태우는 걸로 남아있다.
지금은 사라진 에렘 교의 잔해다.
사실 과거의 사람들도 애꿎은 사제를 죽인다고 해서 비가 그친다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많은 백성들을 안심시키려고 할 수록 더욱 자극적인 방도가 필요하다는 건 정치학의 기본 논리다.
이렇다 할 마법도 과학도 발전하지 않았던 고대 국가에서는 사람의 피를 보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국가를 다스리는 자가 무지하면 백성 또한 무지하고, 그로 인한 불필요한 인적 손실과 자원 낭비는 어느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구(舊) 바론트 제국의 유지를 이어가고 있는 현재의 로푸스 제국이 그 예시이다.
더이상 신에게 기도하면서 현실에 눈을 돌리고 자기위로를 얻을 수 있을 만큼 평화로운 시대가 아니다. 발전없이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로푸스 제국이 가까운 시일 내에 필멸하고 마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무능한 황실에서 국민이 무엇을 본받겠는가.
한 잔의 홍차에 녹아드는 각설탕처럼, 로푸스 제국 역시 과거의 향수에 빠질 틈도 없이 한순간에 무너질 것이다.
허나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
시그너리아 공화국은- 영원하다-!」
철컥.
얇고 검은 줄을 빙그르르 감던 원통이 멈춰선다.
드넓은 홀 안을 가득 울리던 명사의 목소리는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ICL 방위군 특유의 붉은 제복을 입은 소녀는, 테이프 되감기 버튼을 누르고는 슬며시 웃었다. 이 소녀가 시그너리아 공화국 선전방송을 최대 볼륨으로 튼 장소는 다름아닌 로푸스 제국의 수도─커스케이드의 황궁, 그것도 극소수의 인원만이 드나들 수 있다는 반달탑 안이었다. 단순히 가지고만 있어도 팔 하나가 달아날 적국 시그너리아의 제품을 보란듯이 사용한 소녀는 느긋하기 짝이 없는 말을 꺼낸다.
"소감이 어떻습니까. 대현자 씨?"
"호오. 꽤나 멋진 말 아닌가. 반박할 여지가 없다."
라네즈는 양 손을 모아 귀 옆으로 옮기고는 작게 손뼉을 두드린다. '최고'라는 예우가 담긴 정중한 칭찬이다. 물론 진심이 담기지 않은 장난스런 유머였기에 소녀 역시 과장된 답례를 함으로써 대현자에게 맞받아쳤다. 파이프 담배를 문 라네즈의 입술에 가볍게 자신의 입술을 맞춘 것이다. 얼굴을 물리려는 소녀의 턱선을 라네즈는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하는 김에 보다 어른스러운 인사법을 익혀보지 않을래?"
"전 담배피는 여자는 질색입니다."
"하하. 나란 분의 혀로 그대를 이기려면 말로는 부족할 듯 싶군."
"굳이 말 이외의 방법으로도 대현자 씨의 혀를 굴복시킬 수도 있습니다. 내키지는 않습니다만."
낯빛 하나 바뀌지 않는 소녀의 대답에 라네즈는 배를 잡고 웃었다. 눈물까지 찔끔 흘리던 라네즈는 다시 한 번 박수를 쳤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힘껏.
소녀는 자신이 힘들게 입수한 마그네틱 테이프가 흑갈빛 가루가 되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오랜 여행의 여독을 풀 수 있는 여흥거리를 들려줘서 고맙네. 하지만 이걸 다른 황족들이 듣게 할 수는 없어. 불만은 없겠지? 애시당초에 넌 나란 분 이외에겐 들려줄 생각이 없었으니."
자의든 타의든, 본심이든 거짓이든──자신이 대현자에게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 뿐이다.
"물론입니다."
로푸스의 대현자.
이 호칭은 단지 라네즈 아스타밀라가 그 누구보다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에 붙은 것이 아니었다.
호칭에 걸맞는 힘이 라네즈에게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세계를 적으로 돌릴 수도 있으리라.
과거 마법기술을 꽃피웠던 바론트 제국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보라. 우리의 선조는 이렇게 훌륭했도다." 라고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 반달탑 최상층의 홀에서, 대현자와 동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딱 한 명 있다.
"선지자는 항상 제일 잘 나가는 사람에게 줄을 서지요. 게다가 혜택을 독차지하려고 다른 사람에겐 귀뜸도 주지 않는 나쁜 여자애랍니다. 그러니까 황실 쪽으로 정보샐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즈는 창가를 향해 걸어갔다.
부드럽게 유리창을 투과하는 햇빛을 내리쐬자, 소녀의 머리카락이 하늘거린다. 마치 미풍이라도 불어오는 것처럼. 소녀가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입은 ICL 방위군 제복 역시 둥글게 펄럭인다. 반달탑을 오를 때 까지만 하더라도 하늘을 뒤덮던 구름이 어느샌가 개어 있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탑에서 나오는 순간 바로 발각되겠는걸요."
"그대도 참 불편한 몸을 지녔군."
입에 문 담배 파이프를 뻐금거리며 라네즈는 혀를 끌끌 찼다.
"여태까지 이렇다 할 소문도 내지않고 용케도 살아왔구먼."
"무지하게 힘들었어요. 구름낀 날이 아니면 낮에 거리를 나갈 수 없는 그 고통을, 아무 생각없이 정체를 드러낸 대현자 씨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르실 겁니다. 혹시 궁금하시다면 일단 한 번 죽어보시죠. 운이 좋아서 깰 지 누가 알아요? 당연히 깨어날 리가 없지만."
로푸스의 대현자는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
하지만 선지자의 독설 아닌 독설에 라네즈는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이봐… 그거 진실은 아니겠지."
제아무리 대현자라고 할 지라도 선지자가 입 밖으로 내는 "두 가지 진실"은 신경쓰이기 마련이다. 라네즈의 약한 표정에 유즈는 입꼬리를 살짝 말아올렸다.

"글쎄요. 그게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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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올렸던 '그림과 함께하는 토막글 3~5'는 pixiv fantasiaⅡ의 캐릭터 설정 일부와 세계관 일부를 글에 슬쩍 녹여보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일이 복잡해질 수도 있기에(오픈된 세계관이라 하더라도 일단 최초 투고자에게 허락을 구하진 않았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어중간하게 썼다가는 pf세계관 설정이랑 맞지 않을 부분이 산더미일테니까요 ㅇ<-<)앞으로는 pixiv fantasiaⅡ의 순수 오리지널리티가 인정된다고 생각될 만한 특정 고유명사는 쓰지 않겠습니다.
앞서 올린 글도 살짝 몇 단어 정도를 교체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토막글 전체를 갈아엎어야 할 만큼 커다란 변경은 없을 거예요. 어, 어차피 저도 저만의 세계관 정도는 짜두었다구요!!(설덕후의 긍지는 겉치레가 아닙니다!) 아직 제대로 쓰지도 않았으면서 김칫국부터 훌훌 마시는 건 아닌가 싶지만...아무렴 어때요. 일단 저질러봐야 뒷수습이라도 하죠. 'ㅡ'ㅋ
LESS의 잡담이었습니다.
ps. 여기 텍스트큐브에 올리는 토막글 분위기는... 어떤가요? 판타지 소설 분위기가 나나요?
제 예전 습작을 기억하시는 분이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태까지 줄창 어반물만 적어오다가 판타지 소설은 처음이니 걱정이 되어서 그럽니다. 여기는 제 블로그니까 그림을 중간 중간에 섞어도 아무 문제가 없겠지만, 언젠가 다른 사이트에 글을 올릴 날이 온다면 그 때에는 순수하게 글빨로만 승부를 봐야하겠죠.
벌써부터 손발이 후덜거리네요;;
글 열심히 쓰시는 모습 보니까..
답글삭제저도 후딱 dc써야하지 말입니다.
스팀펑크 라고 해야하나요? 기계와 마법이 공존하는 세계관 /ㅅ/
답글삭제재밌어요 랄까 라네즈라는 분을 볼때마다 왜 자꾸 모 CM이 생각나는지[...]
@아케트라브 - 2009/01/12 23:07
답글삭제아케트라브 feat. 위래씨의 글 'DC'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얼른얼른 쓰시져.
@테위 - 2009/01/12 23:15
답글삭제라네즈라는 단어를 딱 들으면 누구나 모 CM을 떠올리죠(...)
마이글 초기에 올려주셨던 글들에 비하면 많이 발전 한 듯 합니다. 특히 방향성이 분명해졌다고 할까요. 그 전 글들은 무엇을 위한 글인지, 무엇을 즐겨야 할지가 불분명했었거든용.
답글삭제@100++ - 2009/01/13 14:53
답글삭제예전엔 너무 자아도취(…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군요. 중2병이라고 하기엔 제 한웅큼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네요ㅠ)식 습작을 적었습니다. 아 부끄러버라. 그래도, 그런 글들을 적으면서 약간씩 좋아지고 있는 듯 한 건 다행이군여.
오. 저는 소설의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토막글의 처음 부터 좋아했죠. 그나저나 선지자가 또 나왔네요. 픽시브 설정인가요?
답글삭제@위래 - 2009/01/14 18:46
답글삭제선지자는 제가 만든 설정입니다. 픽시프 설정과 겹치는 건 대현자 쪽이죠.'-' 소설 분위기가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