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붙은 황갈빛 지면 위.
이 대지의 주인이었던 니룬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들려오는 소리는, 인간의 입과 발에서 나오는 것들.
쓰러져 있는 니룬들은 아무 말이 없다.
청녹색 피의 개울이 거미줄을 그리며 마른 땅을 적신다.
살아서 움직이는 존재는 붉은 옷을 입은 인간들과 들새 뿐.
바닥부터 서서히 차오르는 역한 냄새에 숨쉬기조차 버겁다.
썩어들어가기 시작한 대지는, 한갓 쓰레기장에 불과하다.
이런 쓰레기장을 우리들은 여태까지 얼마나 만들어냈던 건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재미없군."
라네즈는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피를 꺼냈다.
그리고 그것을, 내부 기동열과 햇볕으로 뜨겁게 달구어진 코일러(Coilor)의 외피에 갖다대었다.
치직 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회색 연기가 피어오른다.
담배 필터을 입술 사이로 밀어넣은 그녀는 천천히 해가 저물어가는 하늘을 물끄러미 올려다봤다.
제복과 같은 루비빛을 띤 눈동자가 검은 새의 날개짓을 뒤쫓더니, 라네즈는 이내 시선을 허공으로 돌리고는 푸른 한숨을 흘린다.
한바탕 전투를 벌인 뒤의 담배 한 모금은 늘 각별했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쓴 맛이다.
'로푸스의 대현자'라 불리우는 그녀─라네즈 B. 아스타밀라.
오늘 전투를 끝으로,『한자르 공국 제6기갑사단』라는 칭호는 반납하게 되었다.
"물량으로 모두를 억누른 나라가 최후에는 물량으로 패했다. 역시 마법사는 주역이 되지 못했다…. 아프지만 멋진 경험이야. 책상머리에서는 얻을 수 없는 교훈이지."
"그래도 괜찮지 않습니까?"
코일러의 밑에서, 그녀의 전속 하녀인 씬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장에서까지 쫓아다닐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말했건만.
고집세기는 자신몹지 않은 씬의 말에 라네즈는 피식 웃었다.
"나는 그대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어. 감히 대현자인 나란 분에게 스스럼없이 말을 걸다니."
"칭찬이라면 감사합니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이야말로 계속 신세를 질 터이니, 미리 양해를 구하지."
"네. 저와 아스타밀라 님의 계약은 쭉 이어질 테니까요."
"아무렴. 그렇고 말고."
구름 사이로 드러난 햇빛에 눈을 찡그린 라네즈는, 담뱃재를 허공에 가볍게 털었다. 가루가 된 재는 노란 햇빛 속을 춤추듯 흩날린다.
로푸스의 대현자와 한자르 공국과의 전속계약은 오늘로 끝이었다.
대륙 최강을 자랑하는 코일러, 실전 경험이 풍부한 최상의 파일럿과 검사, 그리고 시그너리아 영역에서 모셔온 최고의 마도사로 이루어진 로푸스 제국의 제1기갑사단『단풍잎사귀』. 황제의 명령에 의해 한자르 공국으로 강제편입된 그들은, 복잡한 국제정세와 한 발짝 떨어져있는 중립지구에서 라네즈의 휘하 하에 니룬들을 궤멸시켰다. 도저히 무리라고 생각했던 북방한계선도 돌파했다. 종국에 이르러서는 물자 보급마저 끊어졌지만, 병사들의 사기 하나만은 하늘을 찔렀다.
그녀가 공작에게로부터 들은 전갈은 단 하나 뿐이었다.
2년 동안 최대한 북쪽으로.
그리고, 그 2년이라는 기간이 드디어 마침표를 찍는다.
"········그럼 슬슬 돌아가볼까."
여태까지 잔고장 없이 용케 버텨주었던 라네즈의 코일러가 지금은 전면을 바닥에 처박고 쓰러져있다. 그 위에 느긋하게 누운 라네즈는, 니룬의 공격으로 박살나버린 배부(背部)를 보며 혀를 찼다.
아아, 이거 수리비 꽤나 깨지겠는데.
정식 보수 외 보너스와 부대비용의 득실을 계산하는 라네즈에게 씬은 태연하게 말했다.
"고국으로 돌아간다면 병사들도 분명 기뻐할 겁니다. 다들 지쳐있으니까요."
"아무렴. 나라는 분은 아직 지치진 않았지만 밀리언벨에서 모두가 기다리고 있으니."
라네즈의 맥락없는 말에 씬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종종걸음으로 전장을 떠났다.
우선 병사들에게 후퇴 소식을 입소문이나마 퍼뜨린 다음, 자신은 막사에서 짐을 꾸리려는 거겠지.
이제 필터만 남은 담배를 손가락으로 튕겨냈다.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꽁초는, 운없는 한 마도사의 로브 위에 안착했다.
검게 물들어가는 빨간 로브를 라네즈는 말없이 바라보았다.
단풍잎사귀는 여기까지가 한계다.
로푸스 제국 ICL이 협력하더라도, 이 이상의 전력은 없겠지.
그녀의 소원을 이루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2년 간의 시간을, 대현자인 그녀가 헛되이 낭비한 것은 아니었다.
"…밀리언벨."
다시 한 번, 라네즈는 그 도시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어디선가 불어온 서풍이 그녀의 말을 품고 대지를 내달린다.
니룬의 사체를 감싸던 엷은 모래먼지가, 서서히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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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정만 만지작거리면 설덕후라는 불치병에 걸린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졸렬한 글이라도 조금씩 적어보려 노력중입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약간이나마 제 필력이 증가한다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글만 멋있게 쓸 수 있다면야,
한밤중에 음식물쓰레기를 헤집는 도둑고냥이를 맨손으로 붙잡으라고 해도 붙잡겠습니닷!!(의불)
LESS의 잡담이었습니다.
뭔가 재미있는 시도같음.
답글삭제짤방같은건 어디서 가져오나요?
이런식의 글쓰기 훈련 괜찮은거 같습니다. 글 느낌도 좋고요.
답글삭제나도 해볼까...
으아아아 설덕후라는 단어가 왜이리 가슴아프게[...]<<
답글삭제저도 리스님을 본받아야겠군요
미흡해도 몇자 몇자씩 끄적여야겠어요
그나저나 정말 이런 분위기 너무 좋군요 *-_-*
그림도 손수 그리신건가요?
그으러엏다아며언, 리이스으 님 따라서 이런 토막글을 저도 한번 써봐야겠군요. 저도 손가락이 썩어버리지 않을까 약간 곤란해하던 참 입니다. 단편 조차 쓸 수 없는 손이라니. 맙소사.
답글삭제@아케트라브 - 2009/01/08 23:06
답글삭제제라드요
는 뻥이고, 토막글에 쓰이는 짤방은 주로 겔부루랑 단부루에서 업어와요.
@100++ - 2009/01/08 23:56
답글삭제글 느낌이 좋다니 다행이네요.'ㅡ')
이런 식으로 쓸 때는, 멋진 일러스트에 글이 파묻히지 않게 늘 조심하고 있어요. 그림을 조각칼로 파서 글로 만들어내는 기분이라고 할까요.
@테위 - 2009/01/09 01:27
답글삭제저보다 성실연재하시는 분이 훨씬 많은데 본받으실 것까지야...^^;; 아, 그리고 전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다른 분들의 그림을 담아오고 있습니다. 토막글 5의 그림은 마사리로 님이 그리신 겁니다.
@위래 - 2009/01/09 06:29
답글삭제글을 쓴다는 건 참 신기해서, 어떤 날은 신들린 듯 손가락이 알아서 쓰더니 다른 날은 머리를 쥐어짜도 글 한 줄이 안나오더군여. 가아끄음씨익 감을 잃어버리지 않을 정도로만 써도 괜찮을 것 같아요.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