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일 금요일

그림과 함께하는 토막글 3



"……하지만 아티론 백작은 레노우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북방으로 향했다는 흔적은 남아있지만 그 이후의 행방은 제국역사서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요. 동시대에 진행되던 바론트와 키르의 전쟁만이 케케묵은 책 속에 빼곡히 적혀있습니다. 국가 간의 전쟁이 드문 편은 아니지만, 일개 국가가 총력을 기울여 칼과 창을 겨눈 전면전은 분명히 화려한 뉴스거리였으니까요. 당대의 기사를 후대에 알리는 일이 역사가의 몫입니다. 역사가의 눈은 뤼에트의 천칭처럼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고 해도 그들 역시 인간이니 말입니다. 이제 와서 그들을 비난하면 불공정한 일일 테죠.
뭐어, 하지만 백작의 기록은 제국 곳곳의 야사에 파편처럼 흩어져 남아있어요. 어때요, 흥미롭지 않나요? 노토스 대륙에서 가장 유명했던 사나이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겁니다. 이 세계의 무대에서요. 그리고 오백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
"아…저기, 케이먼."
"네. 뭔가 질문하시고 싶은 거라도?"
"오늘 아침에 내가 너한테 물어봤던 거 기억해?"
"그거야 물론이죠. 아직 한나절도 지나지 않은 걸요."라고 대답한 케이먼은 모래먼지가 들러붙은 안경을 로브 소매로 닦았다.
"안전하게 밀리언벨로 가는 방법."
"그래. 케이먼. 그런데 왜 우리가 지금 사막을 가로지르고 있는 걸까."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빈츠 씨."
전설에 의하면 아름다운 목소리로 흉작된 밭에서 싹을 키워낸 명가수가 있었다고 한다. 아마 지금 케이먼의 목소리를 백 배 증폭시켜서 외치면 사막이 숲으로 변하겠지. 무서운 기세로 답을 토해내려는 케이먼을 빈츠는 가로막았다.
"아니아니, 그 긴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할 필요는 없어. 없다구."
고개를 저을 힘도 없는 빈츠는 라구스(*건열 기후에 강한 운송동물)에 엎드려 '차라리 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기절했으면.'라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전 마을에서는 셀렌 덕분에 빵 한 조각 먹지 못하고 내쫓기든 빠져나왔다. 한 덩이 남아있던 귀리빵은, 지금 자신의 등 뒤에서 색색 졸고 있는 셀렌에게 준 지 오래였다. 그래도 체력 하나는 자신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과신이었다. 배는 고프고 목은 타는 듯이 마르다. 작은 행렬의 맨 뒤에 있는 소년의 역할은 후방 감시였지만, 말이 감시지, 보이는 거라고는 모래와 탑과 그림자 뿐이다.
"확실히 이 길은 최단 루트인 동시에 시야도 탁 트여있고, 도적도 없지만…."
'걸어다니는 도서관'이란 별명답게 케이먼의 지식 창고는 건드리기만 해도 정보가 흘러넘친다. 허나 자신조차 주체못하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사막이 안전한 이유를 설명하려다 보면 '왜 여기에 사막이 있는지'라는 의문점부터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막 마을을 떠날 무렵 빈츠랑 셀레니아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케이먼은 수백 년 전에 사라져버린 바론트 제국의 일대기를 읊어대기 시작했었다.
쟤는 저렇게 말하면서 지치지도 않는 건가.
"그건 아무래도 됐고. 앞으로 얼마 동안 더 가면 되는거야?"
등 뒤에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에 진땀 흘리는 빈츠가 입을 열었다. 소년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분홍빛 머리카락에 케이먼은 슬쩍 웃는다. 셀렌의 머리가 빈츠의 어깨 위에 올려져 있었다. 턱으로 체중을 싣고 있으리라.
셀렌 자신은 편할 지 몰라도, 저래서야 앞에 있는 사람의 허리가 끊어진다.
"밀리언벨까지는 사흘 안에 도달할 수 있을 겁니다. 가장 가까운 마을에 언제 도착할 지는 티프로 씨에게 여쭙어보도록 하죠."
마을에서 빠져나올 때 "자그마한 석상에 눈코입을 새겨도 티프로보다는 수다스러울 거야."라고 셀렌이 미리 귀뜸을 주기는 했었지만, 생명을 떠맡긴 사막 길잡이가 여섯 시간이 넘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걱정이 되기 마련이다. 케이먼은 뒤돌아보고 있던 몸을 천천히 앞을 향해 돌린다. 빈츠와 셀렌이 함께 타고 있는 라구스와 티프로의 라구스 사이에 위치한 케이먼은 둘 사이의 연락책이 된 입장이다. 천성이 태연한 케이먼은 티프로에게 뭐라고 말을 건다.
"빈츠 씨."
잠시 뒤, 케이먼은 다시 뒤로 돌아보았다.
"라구스를 바꿔 탈까요?"
"……그냥 셀렌을 너한테 던져줄까. 필요없는데."
"아하하. 사양합니다. 티프로 씨의 말로는 앞으로 세 시간은 더 가야만 한다고 하는군요. 그 때까지는 잘 견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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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LESS의 잡담이었습니다.

댓글 4개:

  1. 어쩐지 펄쩍 뛰었군요. 몇 백년 정도.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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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위래 - 2009/01/02 20:35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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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어라, 새로 가입해서 블로그를 다시 등록하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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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ygle - 2009/01/02 23:21
    새해맞이로 아이디를 정리하느라구요. 새로 가입해서 수집했어요. 마이글 메인을 본의아니게 점령해서 죄송함미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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