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구에서 미끄러지는 일 하나 없이 평탄한 길만 골라서 걸어가는 라구스의 흔들림은 편안한 만큼 지루하다.
눈에 보이는 풍경도 재미가 없다.
연갈빛 모랫결 사이로 우두커니 솟아오른 조각난 검형의 거탑은, 한참을 다가가도 그 크기가 변하지 않는다. 어처구니 없는 크기의 거탑들을 케이먼은 '드래곤의 잔해'라고 말했다. 지평선의 끝과 끝을 이어주는 거대한 드래곤이 사막을 뒤덮을 날개를 펼치는 상상에 빠진 빈츠에게, '드래곤의 잔해'란 글귀는 지질학계에서는 단순한 비유로 쓸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덧붙이는 것을 케이먼은 잊지 않았다.
"하지만 말입니다."
구슬이 부서져버린 어린아이처럼 풀이 죽은 빈츠에게 케이먼은 말했었다.
"탑 주위의 잔잔한 암석들을 보세요. 뜨거운 사막바람은 살아있는 숫돌입니다. 돌이고 나무고 인간이고, 열염을 품은 사막바람 앞에서는 잘게 풍화될 뿐입니다. 허나 거탑의 모서리는 멀리서 보기에도 그 날이 아직 무디어지지 않았습니다. 즉, 이 거탑들이 모습을 드러낸 때는 가까운 과거라는 것입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까진 아무도 모릅니다. 거탑들을 뒤덮고 있던 모래가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보기에는 의심쩍은 부분이 많습니다. 생성연대를 알기 위해서는 저기서 약간의 샘플만 떼어가서 분석하면 될텐데 말입니다."
"근데…넌 대체 이런걸 왜 알고 싶어하는 거냐."
"단순한 호기심 일 뿐이지요.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이 대화를 나눈 때는 아직 해가 떠오른지 얼마 지나지 않을 아침 무렵이었다.
간간히 케이먼의 말에 추임새를 넣던 빈츠는 점점 단어와 단어 사이의 침묵이 길어졌고, 케이먼도 열기에 지쳤는지 별 말 없이 앞만 바라보고 있다. 맨 앞의 라구스를 타고 있는 티프로는 간간히 케이먼이 던지는 질문에만 짤막하게 대답한다.
즐거운 말동무로 삼기에는 최악의 일행들이다.
빈츠는 졸린 눈을 손등으로 비빈다.
원래 스케쥴대로였다면, 오늘 새벽에 떠나온 마을─나랍에서 아직 휴식을 취하고 있어야 할 터였다.
시그너리아 공화국으로 입국할 수 있는 유일한 정식관문인 나랍은, 빈츠 일행들과 마찬가지로 밀리언벨로 향하는 온갖 여행객들이 득실거린다. 그 중 대부분이 머리카락 색이 옅은 로푸스 인이었지만, 시정잡배들의 소동을 말리기 위해 분주히 오가는 붉은 제복의 군인들은 시그너리아 인이었다. 국가 간의 편견이 엷은 국경지대라 할 지라도 그들 역시 갑작스레 몰려드는 여행객들이 영 달가운 눈치는 아니다. 어제 저녁 아슬아슬하게 나랍에 들어온 빈츠와 셀렌, 그리고 케이먼은 복잡한 입국 수속을 거치고 나랍의 중심지로 향하였다.
그리고 온갖 억양이 뒤섞인 고함이 들려오는 시장을 지나 티프로와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에 막 다다랐을 때, 비로소 지갑이 소매치기 당했음을 알아차렸다.
넷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침착한 케이먼이 공화군 지서에 분실신고를 했지만 지갑을 찾을 수는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결국, 나랍에 인줄이 있는 빈츠와 셀렌이 밤새도록 뛰어다녀서 라구스를 빌릴 돈을 겨우 융통했고, 새벽이 되자 쉴 틈도 없이 티프로가 출발을 재촉했다.
국경도시 나랍의 명물인 소라탑에 올라가지도 못한 채 그렇게 빈츠 일행은 쫓겨나듯 도시를 떠났다.
엉망진창인 여행이다.
학교 도서관에서 보았던 영웅들의 여행담과 비교하면 시궁창스러운 여행이었다. 지친 몸의 피로가 전부 속눈썹 위에 올라탔는지, 게슴츠레한 빈츠의 은청빛 눈동자는 서서히 반달 모양으로 기울어진다.
"워어 워-"
그 때, 티프로가 라구스를 멈춰세우며 오른팔을 들었다.
케이먼은 즉시 라구스의 고삐를 살짝 잡아당겨 걸음을 늦추었다. 반쯤 정신을 놓고 있던 빈츠의 라구스 역시 덩달아 멈추었다. 기분 좋게 아래위로 흔들거리던 움직임이 사라지자, 곤히 잠을 자던 셀렌이 눈을 떴다.
"흐우웅……. 잘─잤다!"
기지개를 쭈욱 뻗는 셀렌의 로브가 살짝 흘러내리면서 하얀 팔이 드러난다.
"빈츠, 벌써 도착한 거야?"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봐."
라구스에서 훌쩍 뛰어내린 빈츠는 눌러쓰던 후드를 벗고 젖은 머리카락에 엉킨 모래를 훌훌 털어낸다. 어째서 멈췄냐고 셀렌이 눈빛으로 물어도 빈츠는 어깨를 으쓱할 수 밖에 없다. 길잡이 티프로에게 사정을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리니, 케이먼과 함께 막 모래언덕 너머로 사라지는 티프로의 모자가 언뜻 보였다.
"쬐그마한 주제에 걸음은 되게 빠르다니까."라 투덜거리며 미끄러운 언덕을 기다시피 올라갔다. 라구스가 왜 적잖은 거리를 둘러가더라도 평지를 고집했는지 이해가 갔다. 그렇게 몇 번이고 미끄러지면서 모래 등성이를 막 넘은 빈츠는, 눈 앞에 보이는 광경에 입이 딱 벌어졌다.

흔히 평야나 산간지방에서 볼 수 있는 짐승과는 모양과 크기부터 근본적으로 다른 짐승이, 몸을 움츠린채 머리를 모랫속에 처박고 있었다. 지나치게 자라난 앞발 뼈와 그 사이를 메운 두꺼운 막은 흡사 날개로 보인다. 날카로운 사암빛 비늘이 전신에 뒤덮힌 거대한 도마뱀이라니, 여태까지 듣도 보도 못한 동물이다.
마른침을 꿀꺽 삼킨 빈츠는, 그 앞에 서 있는 둘을 보았다.
티프로는 케이먼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더니 뚜벅뚜벅 짐승의 머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뭉툭한 콧잔등을 왼손으로 톡톡 두드린다. 순간, 짐승의 네 눈꺼풀이 동시에 올라갔다. 어느새 뒤따라온 셀렌이 히익 놀라고는 모자를 벗어 가슴에 얹었다.
"야, 이이, 이거, 드드드드, 드래곤 아니야?"
"안타깝게도 드래곤은 아닌 듯 합니다."
언제나 느긋한 케이먼은 전혀 긴장하지 않는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용반목에 속하는 중형 니룬으로 보입니다. 인간으로 치면 우리 또래의 니룬이죠. 어째서 이 사막에 니룬이 있는지는 저 역시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티프로 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잠시 기다려봅시다."
"니-니룬이면 더 문제잖아!! 인간 잡아먹기를 식후 디저트로 여기는 녀석들이라고!"
"모든 니룬이 로푸스인을 적대시하는 건 아닙니다. 침착하세요. 셀레니아 씨."
"하지만 니룬 녀석들이……."
"셀렌. 그만해."
보다못한 빈츠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두려움에서 분노로 변한 셀렌의 눈빛을 케이먼은 태연하게 흘러넘긴다. 생각보다 대인배일세, 라 속으로 생각하며 빈츠는 턱 끝으로 티프로를 가르켰다. 니룬의 머리에 손을 댄 티프로가 서서히 몸을 바로세우자, 그 커다란 니룬이 순순히 고개를 따라 들었다.
"왜 티프로가 니룬을 가까이 하는거냐, 케이먼? 이 괴물에게 무슨 볼일이 있어서."
빈츠는 처음에 물어보아야 했을 질문을 뒤늦게 꺼냈다. 빈츠의 물음이 곤란한 듯 뺨을 긁적이던 케이먼은, 티프로가 살짝 눈을 깜박이는 것을 동의의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순순히 대답했다.
"지금 우리 일행은 밀리언벨에 그 누구보다 일찍 가야 합니다. 그래서 사막을 가로질러 단숨에 수도로 향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제 아무리 티프로 씨가 뛰어난 길잡이라고 해도 라구스의 느릿한 걸음걸이로는 도저히 말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요."
사막로보다는 훨씬 둘러가는 우회도로라 해도 값비싼 말을 타고 신나게 내달리는 부잣집 도련님들이라면 밀리언벨까지 나흘 안에 도달할 수 있다.
거리상으로는 짧은 사막로가 갈길 바쁜 여행객들에게 그리 인기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나랍에서 이국적인 물품을 사 밀리언벨에서 비싼 값에 되파는 상인의 짐마차를 얻어타면, 고생하며 사막을 가로지르는 것보다 빠르고 편안하게 수도로 직행할 수 있다. 밀리언벨까지 향하는 동안 상인을 지켜주는 형식으로 동행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끔 인적 드문 길에서 상인을 죽이고 상품을 강탈해가는 경우도 종종 있기에, 어지간히 믿음직스런 여행객이 아니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가난한 여행객이 두 발 편히 쉬게 하면서 밀리언벨로 가는 일은 여간 어렵지 않다.
"가만. 그러고보니 아까 전에 너 사흘이면 갈 수 있다고 했잖아?"
"그 해답이 바로 이녀석입니다."
구오오오, 긴 울음을 허파에서 끌어낸 니룬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티프로와의 대화가 만족스러웠는지 네 개의 눈을 엇박자로 깜박거린다. 빈츠는 설마 하는 표정으로 니룬을 바라보았다. 마치 잘 길들여진 고양이처럼 티프로의 손끝에 어쩔 줄을 모르는 니룬을 보며 케이먼은 말했다.
"이 니룬을 타고, 단숨에 밀리언벨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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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소설과 일러스트의 조화를 꿈꾸는 (자칭)장르소설의 메카, 노블코어(http://www.novelcore.net)가 열렸더군요. 관심있는 분들은 한 번 들어가보세여. 뭐어... 저는 제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나가기가 싫어요. 겨울이라서 그런가봐요.
LESS의 잡담이었습니다.
나름 괜찮은데용. 이런식의 글쓰기도 나름 재밌는 듯.
답글삭제그리고 픽시브 파쿠리의 시스템을 마이글에도 만들고 있는데...
한번 보시고, 의견이나 아이디어라도... 좀.
http://www.mygle.net/illust/illust.php?list=list
@100++ - 2009/01/07 21:32
답글삭제우왕. 그림란 멋지네요. +_+)
마이글 자게에 간단하게 의견 올릴게요.
이런 분위기 좋군요 *-_-*
답글삭제@테위 - 2009/01/08 10:53
답글삭제헉 좋으시다니 다행이네요.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