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2일 월요일

그림과 함께하는 토막글 1


"맙소사."

피슨은 짧게 탄식하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두드렸다.

"정말이지 믿을 수가 없군. 여기가 정말 대집행관(代執行館)의 지하란 말인가?"
"네. 우리를 굽어살피는 저 뤼에트 여신상처럼 분명한 진실입니다."

투영 술식이 무사히 성공했음을 확인한 주교는 담담하게 보고했다. 그의 오른손을 붙잡고 있는 피슨의 모습은, 동방에서 들여오는 색유리처럼 뒷배경이 투명하게 보였다. 아마 자신 역시 마찬가지리라. 주위의 그림자를 빌어서 의식을 옮겨담는 술식은 어렵고 위험한 만큼 대단히 유용하다. 주교는 피슨과 함께 앞으로 걸음을 내딛었다. 이끼가 잔뜩 슬은 벽의 그림자가 발 뒤꿈치에서 진득하게 떨어져나간다.

"대집행관의 정문은 비록 성을 향하고 있을지라도 후면은 깍아내리는 절벽이옵니다. 비록 지하에 건설한 공간이라고 할 지라도, 자연광을 안으로 들이는 건 간단한 일이겠지요."
"그런가……. 선대 주군들은 지나치게 방심했군. 비록 수도의 외곽지역이라고는 해도 이 건물은 정교의 성지일 터. 보아하니 이 공간 역시 오랫동안 방치된 듯 한데, 도대체 언제까지 여기에 이교도가 있었던 것인가?"

바론트 제국 정교의 주 교리는 유일신이다. 비록 황실법관의 수호상으로 인정받을 만큼 널리 알려진 뤼에트 여신이라고 할 지라도, 피슨의 눈에는 흘러간 고대신앙의 잔류일 뿐이다. '종교관 하나는 반듯하게 세워졌구먼.' 주교는 씁쓸하게 미소지었다. '그 반듯한 날은 언젠가 자신의 턱 밑을 겨누겠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만 수 개월 전까지는 이 곳을 다듬은 손길이 느껴집니다. 덩쿨식물은 수시로 제거해주지 않으면 금새 벽면을 뒤덮어버립니다. 아직 여기 홀은 어느정도 단정되어 보이니, 가까운 과거에 누군가가 줄기를 쳐냈다는 걸로 생각합니다."

깊은 수로에서 울려퍼지는 듯한 주교의 음성이 쓸쓸한 홀을 울린다. 피슨은 말없이 여신상을 올려다보았다. 뤼에트 여신의 등에는 비대칭 날개가 돋아있다. 보다 높이 솟아있는 쪽은 불의, 다른 한 쪽은 정의를 뜻한다고 신화학자들은 말한다. 신의 세계가 될 수 없는 인간의 세계는 숙명적으로 불의가 강한 세계라는 인식이 담겨있는 것이다. 한참동안 그것을 바라보던 피슨은, 축축한 돌이끼와 담쟁이덩굴이 휘감긴 벽으로 슬쩍 눈을 돌렸다.

"아름다운 홀이군. 그렇지 않은가, 케즈너 주교."
"예? 아아, 네."

허를 찌르는 질문에 무의식중에 대답한 주교는, 곧 자신이 내뱉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달았다. 듣기에 따라서는 이교를 추앙하는 쪽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미추는 선악과 분리할 수 없다. 불의에 기울어진 이교는 아름다울 수 없고, 아름다워서는 안된다. 그런데 자신은 이교도의 비밀 본거지를 감히 '아름답다'고 칭했다.

"나는 제국의 모든 백성들을 사랑하고 싶네. 그들의 집에 웃음소리를 가져다주고, 그들의 오크에 포도주가 마르지 않기를 원해. 하지만 그들 중 몇몇은 나의 사랑을 거부하고 있어. 대단히 착각을 하고 있는거지……. 응. 거부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닐텐데 말이야. 안 그런가?"
"네.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억겁의 세월이 쌓인 바론트 제국에 이교도라는 덩굴이 기어오르고 있네. 덩굴이란 건 참 교묘한 생물이지. 자신들을 떠받혀주는 존재의 목을 서슴지 않고 조르니 말일세. 그 이전에, 나는 그들의 목을 쳐내야 한다."

주교의 말을 들은 피슨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한들거리는 그림자 팔을 앞으로 내밀어, 벌린 손을 주먹쥐었다.

"키르(Kirr)와의 전쟁을 끝낸 후에는 가지치기를 할테니 당신은 수도 안의 모든 이교도를 잡아들이도록. 그리고 이 홀은 불태우겠다. 대집행관과 함께, 신에게 선물해드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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뻘──글────

LESS의 잡담이었습니다.

댓글 6개:

  1. 헐 간진데요? 만약 라이트 노벨의 한 단락이라면 상당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리스 님은 글을 잘 쓰시는데도 자주 볼 기회가 없어 섭섭합니다. 혹시 위 글은 연재하는 것인지?



    그나저나 텍스트 큐브 하시는군요. 관심블로그 넣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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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위래 - 2008/12/23 00:16
    아직 연재할 생각은 없어요. 그냥 이것저것 잡다한 글이나 써보려구요. 혹시나 얼음집이 막장이 되면(...) 도피처로 써먹으려고 텍큐하는 거예요. 저도 위래 님처럼 메인 블로그가 따로 있으니, 여기는 자칫하면 방치될 수도 있죠. 으흠.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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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안녕하십니까, 마이글 운영자입니다. 마이글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블로그를 등록해 주셨길래, 본인 확인차 왔습니다만 댓글들을 보니 리스님 본인의 블로그가 거의 확실하군요.



    근데 블로그 등록하실 때 불편하신 점은 없었는지요. 수집기 부분과 블로그 등록 기능을 수정 중에 있어서용. 혹시 불편한 점이 있었거나 건의 사항이 있으시다면 언제라도 리포팅 해주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발전하는 마이글이 되겠습니다. (_ _)



    ps)그리고 윗글을 좀더 쓰시면 마이글에 연재를 해보시는 것은 어떨지요.

    좀 시간적인 여유가 생겨서 내년에는 마이글 쪽에 바짝 신겨을 써볼 계획이니 부탁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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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mygle - 2008/12/23 13:19
    예. 뭔가 곤란한 점이 생긴다면 바로바로 의견글 올리겠습니다. 그리고 윗글은 아직 구체적으로 길게 연재할 계획을 잡지 못해서 확답을 드리기 어렵겠네요. 저 역시 신경을 제대로 써봐야겠어요. 'ㅡ')a 댓글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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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좋은글과 그림감사합니다.많은 도움이될꺼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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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krrm1126 - 2009/10/25 15:57
    도움이 되셨다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ㅡ')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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