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29일 일요일

11월 잡기장


/제 1차 반성회 : 나는 지난 한 달을 어떻게 보냈는가.

0. 글을 게을리 썼습니다.
1. 독서를 게을리 했습니다.
2. 공부를 게을리 했습니다.
3. 디씨질을 성실히 했습니다.

  아... 망했어요. 변명이 앙대요. 특히 3번 업보는 중죄입니다. 디씨질이란 과오를 피로 씻어낼 수 있다면 1리터 정도는 흘릴 각오가 되어 있건만, 이렇게 되니 제 각오는 둘째 치더라도 제 피값이 너무 저렴해지는 기분이라서 슬픕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과거의 저 덕분에 잉여인간化가 된 미래의 저에게 머리 박고 사죄합니다. 시공을 초월한 반성회는 그러면 이걸로 끗. 이번 달은 이미 지나갔으니 다음 달, 아니 오늘부터는 성실하게 지내야죠. 양치기 소년이었다면 진작에 목이 달아났을 정도로 "성실"이란 단어를 가볍게 내뱉는 제 자신감에 저조차 놀라울 따름.

  그러면 앞으로의 포부를 말할 겸 여기 블로그 성격에 대해 썰을 풀어보겠습니다. 저는 현재 텍큐와 이글루스, 두 곳에서 블로그를 열고 있습니다. 이글루스에서는 진득하게 한 곳에서 꾸준히 이런저런 글을 올리고 있지만 텍큐 블로그는 그동안 너무 방치플레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역할 분담이 잘 안되었기 때문입니다. (왠지 수도통합을 중시하는 가카의 의지와 역반응하는 듯해서 짜릿하군요.)

  이글루스=커뮤니티 친목, 짤방, 인터넷 떡밥 류의 가벼운 블로그
  텍스트큐브=소소한 잡담, 감상문, 습작글 등 마음 편안한 정전 블로그

  원래는 이런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으례 예정이라는게 다 그렇듯이, 꿈은 높은데 현실이 시궁창입니다. 애초에 올해 초부터 확실하게 역할 분담해야 했지만 이글루스에 너무 미련을 남겼었나봅니다. 앞으로는 위 성격에 맞는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1일 1포스팅 처럼 부지런해질 일은 없지만(...시험기간이기도 하고, 원래 이 곳이 정전지향이기도 하고;;) 내년에는 올해처럼 책 감상글을 쓰는 데에 소홀히 굴지 않겠습니다. 조만간 열릴(예정인) 제 2차 반성회에서는 또 어떤 반성을 구구절절히 해야 할 지 벌써부터 눈물이ㅠ

   아, 올해 말까지 쓸 중편글은 정말 오랜만에 착실하게 쓰고 있습니다. 쓰는 데까지 쓴 다음, 12월 말일이나 1월 초에 여기에 올리겠습니다. 이렇게까지 공언하지 않으면 또 스리슬쩍 중간에 그만 쓸 것 같은 씁쓸하고 애뜻한 이 느낌은 뭘까요. 사, 사랑?

  LESS의 잡담이었습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2009년 11월 13일 금요일

야심한 시각에『2012』 감상 (미리니름 無)


0. 한줄 평: '해운대x2012' 팬픽쓰고 싶따

1. 집 가까운 곳에 영화관이 생겼습니다. 걸어서 30분 거리는 편하게 오갈 수 있다고 말하긴 뭐하지만, 적어도 버스 지하철 끊어진 오밤중에 터덜터덜 걸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오늘도 방심하고 느긋하게 극장에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고딩이 득-실-득실거리는 로비. 맙소사. 포스트 아포칼립스....가 아니라 포스트 수능의 여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이야.

2. 어쩐지 흑역사만 쏙 빠져 있는 <인디펜던스 데이>, <투모로우>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의 신작 <2012>는, 장장 150분에 다다르는 러닝타임에 무지막지한 볼거리를 투입합니다. 캘리포니아가 인수분해되는 초반의 압도적 시퀀스. 그 정도의 CG가 쉴 새 없이 등장합니다. 관객 천만 동원한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는 어린이 공기놀이 수준입니다. 거대한 항공모함이 거대한 파도와 함께 백악관을 덮치는 씬이 '그저그런 장면' 중 하나에 불과할 정도입니다. 영화 투자자들의 지갑을 홀랑 털어버릴 기세로 <2012>는 관객들의 눈을 황홀할 정도로 즐겁게 해줍니다.

3. 블록버스터 영화의 본분인 킬링타임엔 최적화된 영화이나 아쉬운 점은 있습니다. 거국적으로 대차게 말아먹었던 전작 <B.C 10000>에서 보여준 안드로메다 관광 스토리에서 제법 성장하긴 했지만 <2012>의 내용 알맹이는 '훌륭하다'고 말하긴 부담스럽습니다. 주인공 파티를 아슬아슬한 상황에 던졌다가 구해내는 것이 재난영화의 정석이긴 하지만... 으으. 태클을 거는 것이 패배라고 생각합니다. <2012>는 그런 영화입니다. 재난 블록버스터입니다. 내용에 태클을 걸지 말고, 매 프레임마다 돈냄새가 풍기는 착각이 들만큼 화려한 볼거리를 즐기세요.

4. 거대한 파도가 육지로 몰아친다는 점에서 <해운대>와 <2012>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몰아닥치는 파도 규모는 십배수 단위로 차이납니다. 밍밍한 전세계 육지를 바닷물로 간하려면 파도 높이가 킬로미터 단위는 되어야겠죠. 단순히 파도 크기 수준을 가늠하는 문제를 떠나서, <해운대>는 영화 제목 그대로 '해운대'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오밀조밀한 군상극이고, <2012>는 전세계를 무대로 진행되는 메가스케일 재난활극입니다. 당연히 드라마 밀도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평론가들이 <2012>를 내용 차원에서 까면 나노 단위로 조각날 게 확실합니다. <해운대>에서 느꼈던 푸근한 정을 <2012>에서 바라면 안되겠죠. 벌써부터 스토리로 <2012>를 씹어대는 블로거들을 보면 조금 안타깝습니다. 영화 감상하는 포인트를 조금만 바꿔도 즐겁게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이 감독은 스토리 쪽으로는 뭔가 포기해서는 안될 소중한 무언가마저 포기한 거 같이 느껴지는게 문제....;;)

5. 이 영화는 극장에서 봐야 제맛입니다. 큰 스크린은 물론 쿵쾅쿵쾅 서라운드로 울리는 극장 입체 음향으로 즐겨야죠. 적당한 로맨스와 가족애도 가미되어 있으니, 애인과 함께 보면 금상첨화입니다. 커플 브레이커로 악명을 떨쳤던 <고질라>와는 달라요. 저녁에 지쳐서 보면 깜박 졸 수도 있으니 화창한 대낮에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물론 <2012>는 체감 러닝타임이 몹시 길다는 점을 감안하셔야 겠습니다. 그리고 이 감평을 적은 본인이 싱글이라는 점도 감안하는 편이. :-)

6. 아, 그리고 첫 수능 보신 고3분들 수고하셨어요.
   즐거운 밤 되시길.

LESS의 감상이었습니다.